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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과 분열.

먼저 국론이란 뭔가부터 봐야겠다. 사전을 뒤져보니 국론은 "국민 또는 사회 일반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모 직군의 여러분이 자주 입에 올리시는 국론의 분열이란 그렇다면 성립될 수 없는 논리적 오류를 품고 있다는 말이렸다. 이미 공통된 의견이 어찌 분리되며 분리되면 이미 국론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실은 뻘소리였구요. 국론이란 용어는 적당히 여론과 등치될 수 있는 개념인데, 사회 일반이 한두 머리가 뭉쳐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그 수천만의 머리들이 다같이 같은 생각을 낼 수는 없는 거고. 일단 봐도 사건 1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앞집 할머니가 생각하는 바가 다를 텐데, 이게 같은 동네에서도 이런데 전국적인 수준에서 그 더럽게 많은 이익관계나 입장, 사고방식 같은 객관주관적 요건들이 겹치고-얽히고-설키면 참 잘도 통합 되겠습니다.


뭘 주절거리고 싶냐면 국론이라는 게 결국 [통합된 의견]이라는 걸 말한다면 그건 결국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개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단 말입니다. 개개인이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의 주인 되기를 포기한다면야. 즉 대가리의 위치에서 내려와 수족이나 꼬리말단 같은게 된다면야 통합될 수는 있을 텐데요. 그딴 걸 말하려는 건 아닐 테니까. 뭐 기반하는 감정이 악의든 선의든 간에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국가구성원 혹은 사회구성원 일반이 특정 화제에 대해 공통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국가의 가능성과 경쟁력을 일점집중, 좋은 성과를 거두겠다 이런 과정이 아닌가 짐작하는데. 뭐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이걸로 가정하고.


그거야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훌륭한데 특히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나 뭐 그런 나부랭이들에게 특히 좋을 겁니다만. 이익을 배당받을 주주와 일하는 직원이 분리되어 있을 테니까. 국가나 사회라는 개념에서는 그게 아니니까. 말하자면 결과물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 다다르는 과정에 대해 좀 더 주목할 필요성이 있는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즉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격과 태도가 다양한 가치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말인데. 즉 비효율성이 드러나더라도 상대적소수자들을 밟아서 납작하게 만들어 어디 구석탱이에다 짱박아놓고서 이 이제 통합되었다-고 말하는 건 국가건국이념상. 아니 그런 거 말고서라도 현대사회 문명국가의 일반상식에 비춰봐도 좀 곤란하지 않은가 하는 그런 이야긴데.


국론은 통합될 수 없고 분열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특성은 개념 스스로가 내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거고 암튼간에 통합 비스무리한 걸 하고 싶으면 진보된 과학기술력에 의지해서 여론민주주의의 장을 열고. 거기에서 모두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고 모두가 그냥저냥 만족할 수도 있는 답안을 내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국론 분열 된다고 윽박지르면서 내가 쎄니까 내 말을 들어 넌 내말 안 들으면 국론 분열시키는 나쁜 새키고 그러면 국민 여러분 이 새키는 뽑아주면 안될 나쁜 놈입니다 같은 소리가 들리는 건 내 환청인가.


이런 걸 생각의 흐름 기법이라고 하던가. 마인드맵이라고 하던가. 브레인스토밍?ㅋㅋㅋ
by 세이청 | 2009/10/29 14:12 | 뻘글 | 트랙백 | 덧글(1)
뻘글 3연타 막타.
다이어리 정리 좀 할까 해서 옮김ㅋ

사회적 계급은 실존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경험한 결과를 근거로 말하자면, 그것은 현재 여전히 그 스스로 존재하며 타자들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서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공고히 하는 것을 가능케 할 만큼의 막강한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결코 그 전 세대의 것을 온전히 물려받은 것 또한 아니라는 것에서 볼 때, 특정 세대의 계급의 역사성을 단절시킨다 하더라도 그 역할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보았다.

즉,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인 이상 그 구성원들 스스로가 자신들과 타자들에게 계급의 굴레를 덮어씌우는 것은,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 타자들과 대비시킴으로서 정체성을 찾는 것과도 비견될 수 있도록 불가결하면서도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내가 그 계급을, 엄밀히 말하면 나의 상위 계급을 간접적이나마 실감한 것은 공포심에 기인한다. 이전의 전근대적 구조의 집중된 권력이 제한당한 현대에서 새로이 그 자리를 꿰찬 계급자들은, 그 자신들의 역할과 영향력을 지극히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혹은 느끼고 있으며) 그들 자신들이 (그들에게) 이롭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연합할 경우 일어나는 화학반응으로부터 나타나는 힘이 그들을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를 깨달은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형태의 구조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암묵의 룰 안에서 지배당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깨닫는 순간, 그리고 그들이 뭉치는 순간 흩어트릴 수 있는 빈약한 구조이지만 그 조건이 인류사를 통틀어 셀 수 있는 정도의 횟수에 불과할 만큼 이루기 어려운 것임에 그 카르텔은 지극히 안정적이고, 너무도 무겁다.

사회 구조 안에서밖에 생존할 수 없는 개체로서 사회를 규정하는 실체적이고 일차적인 질서인 법에 의한 지배의 공고한 공공성을 교묘히 무너트리는(그것은 이번의 지극히 비열한 비극에서도 볼 수 있다.) 그 힘과, 치안의 틈새를 파고들 수 있는 가장 즉물적인 물리적 폭력, 그리고 경제적인 제재가 가능한 재물의 힘. 이것들이 맞물리는 경우, 그것에 일개인이 대항한다는 것은 이전 왕조시대의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것과 진배없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결론이 공개된 이야기와도 같은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공화국의 근본이념인 자유, 평등, 정의는 어디까지나 이상에 불과한 허울뿐인 것이 될 것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한 이야기이다.
by 세이청 | 2009/06/05 16:56 | 뻘글 | 트랙백 | 덧글(1)
진보ㅋ
본질적 진보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아니,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 인간 사회의 본질적 진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진보의 혜택은 온전히 모든 인간을 향하는가? 그 이전에, 그 진보의 방향성은 인간지향적인가? 그럴 수 있는가?

아마도 인간이, 문명세계의 유지에서 필수적인 한 조각이 아니게 되는 순간, 사회의 과학기술적 유지발전에 다수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순간, 계급성을 인식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은 소멸하지 않을까 싶다. 자세히 말하면, 하위계급에 소속된 인간들은 사회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고, 어떤 요소도 지배할 수 없으며, 계급성을 의식하는, 즉 상위계급으로 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인간'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세계는 기계가 관리하며 기계는 한줌의 선택받은 자들이 지배할 것이다.

인간을 위한 진보가 인간을 배제하는 꼴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도덕률에 의한 제어가 필요하...ㄴ가? 과연 도덕률은 그런 역할을 할 만큼 충분히 유효한가? 그걸 제어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일 텐데, 어떤 도구가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고 디스토피아를 막아낼 수 있을까.

공부합시다.ㅋㅋㅋ

집에 있던 선풍기가 망가졌다. 그 덕에 땀이 삐질삐질 나서 짜증난다. 우선은 냉방체계의 진보가 필요하다.
by 세이청 | 2009/06/05 16:54 | 뻘글 | 트랙백 | 덧글(0)
선거권 확대.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할 합법적 근거를 마련하여야 할 합리적 이유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 자신을 보호할 어떤 세력도 없기 때문이며, 정치적 권리야말로 청소년들을 궁극적으로 모든 세대들에게서 그들 세대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들 스스로의 주장을 전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주체가 그들 자신이 아닌 이상, 선의가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적 약자에 대해 선의만이 향할 거라고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현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파탄 또한 그 원인 중 하나이다.

폭력 교사에 의한 학생에 대한 폭행은 학생이 자신과 대등한 인격체라는 것을 부정하고, 타자를 교도의 대상으로 여기며 자신의 우월성을 확신하는 편협한 세계관 위에서 기능한다. 대학 교수들이 제 학생들을 후려 패지 않는 것이 과연 교수들이 교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력을 거리끼거나 '교양'있기 때문인가? 그들은 그저 학생들이 그들 자신과 대등한 상대라는 것을 아는 것 뿐이다.

19세기 영국 민중들의 차티스트 운동이나 18세기 대혁명에 빗댈 것도 없이 누구나 제 것을 온전히 남에게 넘겨줄 자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본래 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이 제 입에 넣어주길 바라지 않는 이상, 싸워 빼앗아 낼 뿐이다. 물론 그 방법은 반드시 폭력을 동반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렇다면 오히려 불리한 결과만을 부를 뿐이고, 그에 반응하는 더한 폭력에게 정당성을 줄 뿐이라는 점에서 불합리하다. 길은 그것 외에도 다양하다. 그리고, 몇 세기 전의 방법이 여전히 가장 유효한 희망이라면, 인간 정신의 발전이란 실존하지 않는 말뿐인 개념이며, 인간 사회에겐 미래가 없을 테니까.

근래의 한국 10대들은 표층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본다면 20대보다 훨씬 정치적이다. 경제적 문제 위에서 20대의 정치성은 거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탓도 있지만 그것을 고려한다 해도 10대의 그들 자신들에 대한 규정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세대들에 비한다 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확고하며 이것은 곧 그들이 정치적 주체로서의 최소조건을 갖췄음을 증거한다.

헐ㅋ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041816345&code=940100

학생이면 공부나 해야지 소리 듣고 공부한 하다 지금 20대 꼴 나는데 딱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겠냐ㅋ
by 세이청 | 2009/06/05 16:53 | 뻘글 | 트랙백 | 덧글(0)
악의 자양분.
여전히 무지는 악의 자양분으로 기능하는가? 그렇다면 같은 방식의 사유를 통해, 계몽은 아직 충분히 유의미한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 짐작하지만 실체적 접근에 대해서는 내게는 그것에 대하여 특정하여 언급할 기반이 없으며, 현재의 나 자신의 존재와 역할 역시 그 주제에 대해 유의미하다 말할 수 없다.
by 세이청 | 2009/05/26 21:03 | 뻘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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